화면 속 가장 선명한 초록을 떠올려 봅시다. 형광펜, 에메랄드, 네온사인 — 그보다 더 진한 초록도 상상해 볼까요. 2025년 봄, 다섯 사람이 그 상상을 넘는 색을 실제로 봤습니다. 어떤 물감으로도, 이 글을 띄운 화면으로도 만들 수 없는 청록빛. 연구자들은 그 색에 올로(olo)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먼저 김을 좀 빼 두겠습니다. 지금 이 글에는 올로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못 보여드립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올로 색' 이미지들 — 그 청록색 네모칸들도 전부 올로가 아닙니다. 올로는 화면이라는 물건으로는 원리상 재현이 불가능하거든요. 왜 그런지가 오늘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그러니 이 글은 조금 이상한 약속을 합니다. "당신에게 보여줄 수 없는 색"에 대한 글이라는 거요. 대신 그 색이 왜 존재하는지, 당신 눈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런 색이 튀어나오는지는 — 끝까지 따라오면 손에 잡힐 겁니다.
01색은 물감통이 아니라 '지도'입니다
학교에서 색을 배울 때 우리는 흔히 물감을 떠올립니다. 빨강·파랑·노랑을 섞으면 다른 색이 나온다고요. 그런데 색을 진지하게 다루는 과학자들은 색을 통이 아니라 지도로 그립니다.
히어로 그림의 말굽 모양이 그 지도예요. 정식 이름은 색도 다이어그램(chromaticity diagram)인데, 어렵게 볼 것 없습니다. 사람 눈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색이 이 말굽 안에 다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가장자리로 갈수록 색이 진해지고(순색에 가깝고), 가운데로 갈수록 흐려져 흰색이 됩니다. 무지개의 순수한 빛들은 이 말굽의 바깥 테두리에 놓입니다. 그러니까 테두리가 곧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장 진한 색"의 한계선이죠.
올로가 왜 사건인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올로는 이 테두리 안쪽 어딘가에 찍힌 점이 아닙니다. 초록·청록 쪽 경계선을 넘어간 자리에 있습니다. 지도가 다 그려진 뒤에 지도 밖에서 발견된 땅 같은 거예요. "있는 초록을 더 진하게"가 아니라 "테두리 자체를 넘은 초록" — 그게 올로입니다.
02당신 눈에는 색 감지기가 딱 세 종류입니다
어떻게 경계를 넘을까요? 답은 물감이 아니라 눈 안쪽에 있습니다.
망막에는 색을 감지하는 세포가 있습니다. 원뿔세포(cone cell)라고 부르는데, 사람은 세 종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응하는 빛의 파장에 따라 이름이 붙어요. 긴 파장(빨강 쪽)에 잘 반응하는 L 원뿔, 중간 파장(초록 쪽)의 M 원뿔, 짧은 파장(파랑 쪽)의 S 원뿔. 우리가 보는 수백만 가지 색은 전부 이 세 감지기가 각자 얼마나 흥분했는지의 조합일 뿐입니다.
노랑을 예로 들어 볼까요. 세상에 '노랑 감지기'는 없습니다. 노란빛이 들어오면 L과 M이 함께 세게 반응하고, 뇌가 그 두 신호의 조합을 '노랑'이라고 읽는 겁니다. 색이란 결국 세 숫자로 된 신호예요. 우리가 보는 모든 색은 (L, M, S) 세 칸에 채워진 값의 조합입니다.
그럼 직접 켜 보죠. 아래에서 세 종류의 원뿔세포를 하나씩 켜고 꺼 보세요. 어떤 조합이 어떤 색으로 읽히는지 — 그리고 딱 하나, 뭔가 이상한 조합이 있다는 것도.
원뿔세포를 직접 켜 보세요
L·M·S 세 감지기를 켜고 끄면, 뇌가 그 조합을 무슨 색으로 읽는지 나옵니다.
위 스위치를 켜고 꺼 보세요.
※ 색 견본은 화면이 흉내 낼 수 있는 근삿값입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딱 하나의 조합만은 화면으로 절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03자연이 못 켜는 스위치 — 'M 하나만'
조합기에서 M만 켜 봤다면, 화면이 색을 못 보여주고 빗금 친 칸을 띄웠을 겁니다. 그게 우연이 아닙니다. 여기에 올로의 비밀이 통째로 들어 있어요.
문제는 M 원뿔의 자리입니다. M은 세 감지기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M이 반응하는 파장 범위는 L이 반응하는 범위와 거의 포개져 있어요. 그래서 M을 자극하는 빛은 거의 예외 없이 L도 함께 자극합니다. 버클리 연구팀의 표현을 빌리면, M을 흥분시키는 빛의 약 85%는 L도 함께 흥분시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 자연에는 'M만 켜는 빛'이 없습니다. 아무리 파장을 고르고 골라도, M을 건드리는 순간 옆에 있는 L이 딸려 옵니다. L은 긴 파장 끝, S는 짧은 파장 끝에 떨어져 있어서 어느 정도 따로 자극할 수 있는데, 한가운데 낀 M만은 혼자 켤 방법이 없는 거죠. 그래서 (L=0, M=1, S=0)이라는 신호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떤 사람의 뇌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신호입니다.
올로는 '새로 만든 물감'이 아닙니다. 당신 눈이 평생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신호를, 억지로 만들어 뇌에 밀어 넣었을 때 나온 색입니다.
그 '억지로'를 해낸 게 UC 버클리와 워싱턴대 공동 연구팀입니다. 이들은 Oz라는 장치를 만들었어요. 오즈의 마법사에서 에메랄드 도시의 안경을 떠올리면 됩니다. 먼저 참가자의 망막을 정밀 촬영해 원뿔세포 하나하나의 위치 지도를 만듭니다. 그다음 543나노미터짜리 초록 레이저로 망막의 손톱만 한 작은 영역(시야로 치면 약 0.9도, 손끝을 팔 뻗은 거리에서 본 크기쯤)을 매우 빠르게 훑으면서, M 원뿔에 겨눴을 때만 아주 약한 빛 알갱이를 쏩니다. 한 번에 원뿔세포 약 1,000~2,000개를 겨눴죠.
이름 olo는 이진수 010에서 왔습니다. L·M·S 세 자리 중 가운데 M만 1, 나머지는 0. 조합기에서 당신이 켰던 바로 그 상태입니다. 참가자 다섯 명 모두 화면에서도 자연에서도 본 적 없는 극채도의 청록빛을 봤다고 보고했습니다. 참고로 다섯 명 중 셋은 이 연구의 저자 본인들이었고, 무슨 색을 볼지는 모른 채(블라인드)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04그런데 — 이게 정말 '새로운 색'일까요?
여기서 솔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발견은 화제가 됐지만, '새로운 색'이라는 표현을 두고는 논쟁이 있습니다.
먼저, 연구팀이 올로가 정말 경계 밖이라는 걸 어떻게 확인했는지가 재밌습니다. 참가자에게 올로를 보여준 뒤, 옆에서 진짜 단색광(무지개 순색)의 청록을 켜 두고 "두 색을 똑같이 맞춰 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참가자들은 순색을 아무리 조절해도 올로를 못 따라갔습니다. 오히려 올로 쪽에 흰빛을 섞어 흐리게 만들어야 겨우 순색과 같아졌죠. 순색보다 더 진한 색이라는 뜻입니다 — 앞서 말한 '테두리 바깥'을 실험으로 보인 겁니다.
그럼에도 반론이 있습니다. 런던 시티세인트조지대의 시각과학자 존 바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새로운 색이 아니다. M 원뿔에서만 신호가 올 때 나타나는, 아주 진한 초록일 뿐이다." 기술적으로 대단한 성취인 건 맞지만, '없던 색을 만들었다'기보다 '있던 초록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것'에 가깝다는 지적이죠.
어느 쪽이 맞을까요? 저는 이게 사실 다툼이라기보다 '새롭다'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연구팀도 "자연에 없는 물감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다만 어떤 자연광으로도 못 만드는 신호가 만든, 평범한 경험 바깥의 시각 체험이라는 거죠. 사람마다 이걸 '새 색'이라 부를 수도, '극단의 초록'이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판정이 갈리는 지점을 숨기지 않는 게, 오히려 이 이야기의 정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올로가 '테두리 안쪽 색'이든 '테두리 밖 색'이든, 화면으로는 못 보여준다는 사실. 화면은 빨강·초록·파랑 세 종류 빛만 섞습니다. 그 셋을 아무리 섞어도 'M만 켜는 신호'는 못 만들거든요. 그래서 이 글도, 세상 어떤 유튜브 썸네일도 올로를 담을 수 없습니다.
05왜 이런 걸 하냐면 — 색맹과 망막을 향한 길
단지 신기한 색 하나 보려고 이 고생을 한 걸까요? 아닙니다. Oz의 진짜 목표는 원뿔세포를 하나하나 조종하는 기술 그 자체입니다.
이게 열리면 갈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적록색맹은 L이나 M 원뿔의 신호가 뒤섞여 빨강과 초록을 잘 못 가르는 경우가 많은데, 원뿔을 골라 자극할 수 있다면 "색맹인 사람에게 못 보던 색 구분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를 실험으로 물어볼 수 있습니다. 원뿔세포가 죽어 가는 여러 망막 질환을 연구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요. 심지어 원뿔이 네 종류인 '사색형 색각'을 흉내 내 보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실험실 한구석의, 눈 하나를 딱 고정하고 하는 초기 단계입니다. 당장 안경처럼 쓰는 물건이 나오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 색을 '밖에서 눈으로'가 아니라 '눈 안에서 세포 단위로' 다루기 시작한 거죠.
올로라는 색 하나가 화제였지만, 진짜 이야기는 우리가 색을 보는 방식 — 세 감지기의 조합이라는 그 구조를 인간이 직접 만지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색이 어떻게 세 신호에서 만들어지는지, 눈이 어떻게 빛을 색으로 바꾸는지를 직접 만져 보면 올로가 왜 사건인지 더 또렷해집니다.
SIM 빛의 합성 RGB 실험빨강·초록·파랑 세 빛을 섞어 색을 만드는 원리 — 화면이 왜 '세 종류'만으로 색을 내는지 → SIM 물체를 보는 과정
빛이 눈에 들어와 '본다'가 되기까지 — 망막의 감지 세포까지 따라가 보기 → SIM 영상 장치의 색 표현
화면은 픽셀 세 칸(RGB)으로 색을 낸다 — 그래서 올로를 못 담는 이유 →
- 원뿔세포 세 종류 — L(빨강 쪽)·M(초록 쪽)·S(파랑 쪽). 우리가 보는 모든 색은 이 셋의 신호 조합이다.
- M만 켜기의 불가능 — M은 L과 파장이 겹쳐, 자연광으로는 M만 따로 못 켠다. (L·S는 어느 정도 가능)
- 올로(olo) — 레이저로 M 원뿔만 자극(신호 010)했을 때 나온 극채도 청록. 2025년 UC 버클리·워싱턴대.
- 경계 밖 — 순색보다 진해서, 순색과 맞추려면 올로에 흰빛을 섞어야 했다(실험으로 확인).
- 논쟁 중 — '새 색'이냐 '극단의 초록'이냐는 정의의 문제. 단, 화면으로 재현 불가는 확실.
다시 히어로의 말굽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 테두리는 오랫동안 "사람이 볼 수 있는 색의 끝"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올로는 그 끝이 세포를 직접 건드리면 넘어갈 수도 있는 선이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당신에게 이 색을 보여드릴 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색이 왜 존재하는지는 이제 아시죠 — 당신 눈 안의 세 감지기, 그중 혼자서는 절대 안 켜지던 가운데 하나. 거기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이 글의 근거 — 1차 자료
- Fong, J. C., Doyle, H., et al. (2025). Novel color via stimulation of individual photoreceptors at population scale. Science Advances, 2025-04-18. DOI:10.1126/sciadv.adu1052 — Oz 기법, 543nm 레이저, 참가자 5인(3인은 저자·블라인드), 채도 초과의 색 맞추기 실험.
- UC Berkeley News. Scientists trick the eye into seeing new color 'olo'. — M·L 파장 겹침(약 85%), 원뿔 1,000여 개 조종, 색맹·망막 질환 응용 언급.
- Fong·Doyle·Roorda·Ng 연구팀 소개 및 응용. UC Berkeley Engineering, A new hue (2025).
- 반론: 시각과학자 John Barbur(City St George's, University of London)는 "새로운 색이 아니라 아주 진한 초록"이라고 지적. SBS News, Olo: A new colour or science fiction? — '새롭다'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
- 본문 속 색도 다이어그램·원뿔세포 조합은 삼색설(trichromacy)에 근거한 교육용 단순화다. 실제 원뿔 감도 곡선은 부드럽게 겹치며, 조합기의 색 견본은 근삿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