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그 질문을 읽을 때, 어떤 사람은 머릿속에서 또렷한 '내 목소리'로 문장을 따라 읽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런 게 아예 없습니다. 글자의 뜻만 그냥 — 소리 없이 — 알아챕니다. 둘 다 정상입니다. 그리고 둘은 생각보다 멀리 떨어진 두 세계예요.
저는 수업에서 가끔 이걸 물어봅니다. "여러분 머릿속에서 지금 제 말을 누가 따라 읽고 있나요?" 그러면 교실이 둘로 갈립니다. 절반은 "당연하죠, 늘 그래요" 하고, 절반은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는 얼굴을 합니다. 같은 교실, 같은 나이, 같은 시험을 보는 학생들인데 머릿속 풍경은 이렇게 다릅니다.
이 '머릿속 목소리'를 과학에서는 내적 발화(inner speech)라고 부릅니다. 책을 눈으로만 읽는데도 단어가 소리처럼 들리는 것, 시험 직전에 "침착하자, 1번부터" 하고 스스로에게 말 거는 것, 화났을 때 머릿속으로 할 말을 미리 연습하는 것 — 전부 내적 발화입니다. 문제는, 이게 모두에게 똑같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죠.
01두 갈래로 갈리는 머릿속 — 내적 발화의 스펙트럼
오랫동안 사람들은 자기 머릿속이 남들 머릿속과 같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당연한 착각입니다. 내 머릿속은 평생 나만 들여다보니까요. 그러다 2020년대 들어 온라인에서 "너는 생각할 때 머릿속에서 말소리가 들려?"라는 질문이 퍼졌고, 댓글창이 뒤집혔습니다. "그걸 안 듣는 사람이 있다고?"와 "그걸 듣는 사람이 있다고?"가 동시에 터진 겁니다.
연구자들이 실제로 들여다보니, 내적 발화의 양은 사람마다 거의 끊임없음부터 거의 없음까지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한쪽 끝에는 하루 종일 머릿속 라디오가 켜져 있는 사람이 있고, 반대쪽 끝에는 말이 거의 끼어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후자는 생각을 이미지로 하거나, 느낌·개념 덩어리로 한 번에 처리하죠.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둡시다. 머릿속에 목소리가 적다고 해서 생각이 얕거나 어휘력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그냥 생각을 굴리는 방식이 다른 겁니다. 말 대신 다른 도구를 쓰는 거예요.
잠깐 —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아래 다섯 문장에 '그렇다 / 아니다'로 답해 보세요. 점수는 어디에도 저장되지 않습니다.
이건 정식 검사가 아니라, 글을 읽는 동안 자기 머릿속을 한 번 들여다보게 하는 장치입니다. 내적 발화의 양은 상황과 순간마다 출렁이거든요.
02'무내성언어'라는 새 이름
이렇게 내면의 목소리가 거의 없는 사람에게 이름이 붙은 건 의외로 최근입니다. 2024년, 덴마크와 미국의 두 인지과학자 요한 네데르고르와 게리 루피안이 학술지 Psychological Science에 한 단어를 제안합니다. 무내성언어(anendophasia) — 내적 발화의 경험이 거의 또는 전혀 없다고 보고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a(없음) + endo(안) + phasia(말)', 말 그대로 '안에서 하는 말이 없음'이죠.
이름을 새로 붙였다는 건 중요합니다. 이름이 없으면 연구도, 대화도 시작되지 않거든요. 두 사람은 네 차례의 실험으로 "머릿속 목소리가 적은 사람은 실제로 뭐가 다를까?"를 따져 물었습니다.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내적 발화가 적다고 답한 사람들(46명)은 많다고 답한 사람들(47명)보다 말소리를 다루는 단기 기억 과제에서 성적이 낮았고, 운율(라임) 판단도 더 어려워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과 '노랑'처럼 두 단어의 끝소리가 운으로 맞는지를, 머릿속에서 소리 내어 굴려 따져 보는 일이죠. 머릿속에 '소리 작업대'가 덜 깔려 있으니, 소리를 다루는 일에서 손해를 본 셈입니다.
머릿속 목소리는 '있으면 똑똑하고 없으면 멍청한' 능력이 아닙니다. 어떤 일엔 유리하고, 어떤 일엔 그게 굳이 필요 없는 — 도구의 차이에 가깝습니다.
중요한 건 그다음 문장입니다. 연구자들은 이 차이가 평소엔 잘 안 보인다고 했습니다. 무내성언어인 사람은 다른 전략 — 손가락으로 짚기, 이미지로 떠올리기, 패턴으로 묶기 — 으로 빈자리를 메우거든요. 그래서 일상에서는 누가 어느 쪽인지 거의 티가 안 납니다. 실험실에서 소리 다루는 과제를 정확히 들이밀어야 비로소 갈라지는 거죠.
03그런데 — 이 과학은 아직 '확정'이 아닙니다
여기서 솔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주제는 뜨겁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은 논쟁 위에 서 있습니다.
2025년, 안드레아스 린드라는 연구자가 같은 학술지에 반론을 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흥미로운 연구인 건 맞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내적 발화가 완전히 0이다'를 증명한 건 아니다." 적다고 답한 사람도 측정해 보면 약간은 있을 수 있고, '없다'는 보고가 곧 '진짜 없음'은 아니라는 거죠.
이 지적이 날카로운 이유는, 이 분야의 데이터가 거의 다 자기 보고에 기댄다는 데 있습니다. 머릿속은 들여다볼 창문이 없어서, 결국 본인에게 "있었어요?"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머릿속도 자주 틀리게 기억합니다.
실제로 심리학자 러셀 헐버트는 무작위로 울리는 알람을 주고 "방금 그 순간 머릿속에 뭐가 있었나"를 즉석에서 적게 하는 방법을 써 왔는데, 이렇게 재 보면 내적 발화가 잡힌 순간은 표집된 순간의 대략 20% 안팎(연구·표본마다 다릅니다)으로,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나는 늘 머릿속으로 말해"라고 믿는 사람조차, 실제로 재 보면 그 비율이 생각보다 낮게 나오곤 했죠. 그러니 "30~50%만 머릿속 독백을 한다", "5~10%는 거의 없다" 같은 숫자들도 확정된 통계가 아니라 추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정확합니다.
저는 이 '아직 모른다'가 이 이야기의 약점이 아니라 매력이라고 봅니다. 인간의 머릿속이라는, 바로 옆에 있는데도 아직 지도가 덜 그려진 영역이니까요.
04그 목소리는 '소리'가 아닙니다
여기서 과학 선생으로서 가장 짚고 싶은 지점이 나옵니다. 머릿속 목소리를 우리는 분명히 '소리'로 느낍니다. 그런데 그건 진짜 소리가 아니에요.
진짜 소리는 물리적 사건입니다. 공기가 떨리고, 그 떨림이 파동으로 퍼져, 고막을 밀고, 달팽이관의 세포가 그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꿉니다. 즉 공기 분자의 압력 변화가 있어야 소리죠. 그런데 머릿속 독백에는 떨리는 공기가 없습니다. 고막도 가만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목소리'는 뭘까요? 지금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뇌가 말하기 시스템을 실제로 소리 내지 않고 흉내만 낸다는 겁니다. 입과 성대로 보내려던 명령의 '복사본'을 뇌 안에서 돌려, 마치 들은 것처럼 청각 영역을 살짝 깨우는 거죠. 그래서 또렷한 음색까지 느껴지지만, 정작 밖으로는 1mm의 공기도 밀리지 않습니다. 머릿속 목소리는 뇌가 만든 소리의 시뮬레이션인 셈입니다.
'진짜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달되는지를 직접 만져 보면, 머릿속 목소리가 왜 '소리 같지만 소리가 아닌지'가 훨씬 또렷해집니다. 아래 시뮬레이션에서 소리를 직접 흔들어 보세요.
SIM 소리의 특성 분석진폭·진동수를 바꾸며 소리가 어떻게 '큰 소리·높은 소리'로 들리는지 직접 조작 → SIM 음파의 간섭과 소음 제어
두 소리가 만나 보강·상쇄되는 원리 — 노이즈 캔슬링이 '소리로 소리를 지우는' 방법 →
05머릿속 독백을 공부에 써먹는 법
이 차이는 시험장까지 따라옵니다.
머릿속으로 '소리 내어' 외우는 전략 — 단어를 속으로 되뇌고, 공식을 리듬으로 외우고, 영어 문장을 속으로 읽는 것 — 은 내적 발화에 크게 기댑니다. 그래서 내적 발화가 또렷한 사람에겐 이 방식이 잘 듣습니다. 반대로 머릿속 목소리가 옅은 사람이 같은 방식만 고집하면 손해를 볼 수 있어요. 이런 사람은 이미지로 그리기, 직접 손으로 써 보기, 도식으로 묶기가 더 잘 맞습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남들이 효과 봤다는 공부법이 나한텐 영 안 맞는다" 싶을 때, 그게 의지나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내 머릿속이 작동하는 방식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방법을 바꾸면 됩니다. 자기 머릿속을 한 번 정확히 들여다본 사람만 이 선택을 할 수 있죠.
- 내적 발화(inner speech) — 머릿속에서 들리는 '내 목소리'. 사람마다 양이 끊임없음~거의 없음까지 넓게 다르다.
- 무내성언어(anendophasia) — 내적 발화가 거의/전혀 없다고 보고되는 상태. 2024년 네데르고르·루피안이 이름 붙임.
- 실험 결과 — 내적 발화가 적은 사람은 소리 기억·운율 판단에서 손해. 단 다른 전략으로 가려져 평소엔 잘 안 보임.
- 아직 논쟁 중 — '완전히 0인 사람'의 증명은 미결. 데이터가 대부분 자기 보고라 숫자는 추정치.
- 그 목소리는 소리가 아니다 — 떨리는 공기 없이 뇌가 만든 '소리의 시뮬레이션'.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지금 이 문장을 읽는 당신의 머릿속은 또렷했나요, 조용했나요? 어느 쪽이든 괜찮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내려놓읍시다 — 옆 사람 머릿속이 내 머릿속과 똑같을 거라는 믿음, 그것 하나면 됩니다. 거기서부터 꽤 재미있는 대화가 시작되거든요.
이 글의 근거 — 1차 자료
- Nedergaard, J. S. K., & Lupyan, G. (2024). Not Everybody Has an Inner Voice: Behavioral Consequences of Anendophasia. Psychological Science. — '무내성언어' 용어 제안과 4건의 행동 실험.
- Lind, A. (2025). Are There Really People With No Inner Voice? Commentary on Nedergaard and Lupyan (2024). Psychological Science. — '완전한 부재'는 증명되지 않았다는 반론.
- British Psychological Society Research Digest. The silent inner world of anendophasia. — 연구 해설.
- 내적 발화의 빈도가 통념보다 낮게 측정된다는 점은 Russell Hurlburt의 경험 표집(Descriptive Experience Sampling) 연구 전통에 근거함. 본문의 30~50%·5~10% 수치는 자기 보고 기반 추정치로, 확정 통계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