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서 '이제 그만하자'고 마음이 꺾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래 우리는 그 결정을 뉴런—전기 신호를 쏘는 신경세포—의 몫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2025년, 물고기와 쥐와 초파리에서 거의 동시에, 그 '그만' 스위치를 누르는 건 뉴런이 아니라 그 곁에 붙어 있던 별 모양 세포였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이름부터 낯설 겁니다. 별세포(성상교세포, astrocyte). 현미경으로 보면 중심에서 돌기가 사방으로 뻗어 별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입니다. 교과서에서 이 세포는 늘 조연이었어요. 뉴런에게 영양을 대 주고, 자리를 잡아 주고, 찌꺼기를 치우는 — '뇌의 청소부·지지대' 정도로요. 정작 생각과 감정은 뉴런이 다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조연이, 알고 보니 무대 뒤에서 조명 스위치를 쥐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01뇌의 절반을 '보조 출연'으로 취급했다
뇌에는 뉴런만 있는 게 아닙니다. 뉴런 곁에는 교세포(glia)라 불리는 다른 세포들이 있고, 별세포는 그중 가장 흔한 축입니다. 흔히 "교세포가 뉴런보다 열 배 많다"고 배웠지만, 실제로 세어 보니 그 통념은 과장이었습니다. 사람 뇌에서 뉴런과 비(非)뉴런 세포의 수는 대략 비슷한 규모—어림잡아 1:1에 가깝다는 게 지금의 계산입니다. 즉 뇌의 세포 절반가량이, 오랫동안 '생각의 바깥'으로 밀려나 있었던 셈이죠.
왜 밀려났을까요? 뉴런은 눈에 띄는 일을 합니다. 전기 스파이크를 탁 하고 쏘죠. 측정하기 좋고, 극적입니다. 반면 별세포는 전기 스파이크를 쏘지 않습니다. 대신 세포 안에서 칼슘(Ca²⁺) 농도가 느릿느릿 오르내립니다. 초 단위, 때론 그보다 느린 리듬으로요. 뉴런의 밀리초 번쩍임에 익숙한 신경과학이 이 느린 파동을 오래 '잡음'이나 '배경'으로 넘겨 온 겁니다.
그러니 한 세대 동안 뇌 지도는 사실상 '뉴런 지도'였습니다. 이번 발견이 흔든 건 바로 그 지도의 완결성입니다.
02물살에 지친 물고기가 '포기'하는 순간
가장 그림 같은 실험은 제브라피시(제브라 다니오) 새끼에서 나왔습니다. 미국 하워드휴스 의학연구소(재닐리아)의 미샤 아렌스 연구팀은, 어린 물고기를 가상의 물살 속에 두고 헤엄치게 했습니다.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려 발버둥칩니다. 그런데 아무리 꼬리를 쳐도 앞으로 안 나가게 조건을 걸어 두면—즉 '헛수고'가 계속되면—어느 순간 물고기는 딱 멈춥니다. 포기하는 거죠.
연구팀이 그 순간의 뇌를 들여다봤습니다. 물고기가 헛되이 물살과 싸우는 동안, 노르에피네프린(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신호물질을 뿜는 뉴런이 반복해서 발화합니다. 그러면 그 곁의 별세포 안에서 칼슘이 차오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칼슘이 실패한 시도의 횟수를 세는 것처럼 차곡차곡 쌓였다는 점입니다. 마치 눈금이 채워지듯요. 그리고 눈금이 어느 선을 넘으면—별세포가 '그만' 신호를 내보내고, 물고기가 헤엄을 멈춥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확인이 나옵니다. 연구팀이 레이저로 별세포를 꺼 버리자, 물고기는 아무리 지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별세포를 인위로 켜자, 물고기는 곧바로 헤엄을 그쳤습니다. 뉴런이 아니라 별세포를 조작하니 '포기'가 켜졌다 꺼졌다 한 겁니다. 이 결과가 담긴 논문은 2025년 5월 Science에 실렸습니다.
직접 눌러 보기 — 별세포의 '스톱 스위치'
물살에 맞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어 보세요. 시도할 때마다 별세포 안에 칼슘이 쌓입니다. 이 모형은 실험을 단순화한 도식이지, 실제 측정값이 아닙니다.
아직 헤엄치는 중입니다. '시도' 버튼을 눌러 칼슘을 쌓아 보세요.
별세포를 꺼 두면(레이저 차단), 칼슘이 차올라도 '그만' 신호가 나가지 않아 물고기는 멈추지 못합니다 — 실제 실험에서 관찰된 그대로요.
03물고기, 쥐, 초파리에서 똑같은 회로
한 동물의 한 실험이라면 '재미있는 예외'로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그렇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기 Science에 나란히 실린 세 편의 논문이, 완전히 다른 세 동물에서 거의 같은 신호 회로를 가리켰거든요.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WashU)의 토머스 파푸앵 연구팀은 쥐에서 봤습니다. 노르에피네프린이 시냅스(뉴런과 뉴런의 연결)를 바꾸는 그 유명한 효과가, 알고 보니 전적으로 별세포를 거쳐서 일어났습니다. 뉴런에 달린 노르에피네프린 수용체를 없애도 효과가 남았고, 대신 별세포 쪽 수용체와 칼슘 반응을 막자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설마 이 전부가 별세포 몫일 줄은 몰랐다"는 게 연구자의 반응이었죠.
오리건보건과학대의 마크 프리먼 연구팀은 초파리에서 봤습니다. 초파리 별세포는 도파민이나 글루탐산을 그냥 들이대면 반응하지 않다가, 노르에피네프린에 해당하는 곤충 물질(옥토파민·티라민)에 먼저 잠깐 노출되면 비로소 다른 신호물질에도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별세포가 '지금 귀를 열지 말지'를 스스로 조절하는 문지기였던 겁니다.
세 동물, 세 실험실, 그런데 공통된 밑그림은 이렇습니다. 각성·경계 신호(노르에피네프린) → 별세포의 칼슘 상승 → 화학 신호 방출 → 주변 뉴런 회로의 상태 전환. 진화적으로 수억 년 떨어진 동물들이 같은 방식을 쓰고 있다면, 이건 우연한 곁가지가 아니라 뇌 설계의 기본 부품일 가능성이 큽니다.
뉴런의 배선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도, 뇌의 발화 패턴을 통째로 바꿀 수 있습니다. 별세포가 그 '상태 손잡이'를 쥐고 있으니까요.
04그 신호는 스파이크가 아니라 '천천히 번지는 화학'
그렇다면 별세포는 뉴런에게 어떻게 말을 걸까요? 뉴런처럼 전기 스파이크를 쏘는 게 아닙니다. 훨씬 느리고, 화학적입니다.
물고기와 쥐 논문이 공통으로 지목한 내보내는 경로는 이렇습니다. 별세포 안에 칼슘이 충분히 차오르면, 세포는 ATP—세포의 에너지 화폐로 익숙한 그 분자—를 밖으로 내보냅니다. 이 ATP는 세포 바깥에서 아데노신이라는 물질로 바뀌고, 아데노신이 주변 뉴런의 수용체에 달라붙어 회로의 활동을 눌러 줍니다. 카페인이 졸음을 쫓는 게 바로 이 아데노신의 작용을 막아서라는 걸 떠올리면, 낯선 이름이 조금 가까워질 겁니다. (초파리 논문은 이 '내보내는' 쪽 대신, 앞서 본 것처럼 별세포가 신호에 '반응할지 말지'를 여닫는 문지기 쪽을 밝혔습니다. 셋이 완전히 같은 분자 경로를 쓴다는 뜻은 아닙니다.)
핵심은 속도와 범위입니다. 뉴런의 스파이크는 밀리초 단위로 한 지점을 정확히 때립니다. 반면 별세포의 화학 신호는 초 단위로 천천히, 게다가 확산으로 넓게 번집니다. 한 방을 정밀하게 겨누는 대신, 방 전체의 분위기를 서서히 바꾸는 쪽이죠. 그래서 별세포는 '어느 시냅스 하나'가 아니라 '뇌의 지금 상태'—얼마나 깨어 있고, 얼마나 밀어붙일지—를 조율하기에 알맞은 세포입니다.
이 '천천히 번지는 화학'을 감각으로 붙잡으려면, 신호를 나르는 두 가지 바탕—세포라는 그릇과, 분자가 퍼지는 확산—을 직접 만져 보는 게 빠릅니다.
SIM 세포의 구조와 기능별세포도 결국 하나의 세포 — 막·소기관이 어떻게 짜여 신호를 주고받는지 3D로 조작 → SIM 입자의 운동 — 확산
ATP·아데노신 같은 분자가 세포 바깥으로 '천천히 넓게' 번지는 방식을 직접 흔들어 보기 →
05그런데 — 아직 "감정을 조종한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합니다. 이 발견은 분명 크지만, 헤드라인이 자주 앞서 나가거든요.
첫째, 이 실험들은 물고기·쥐·초파리에서 나왔습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확인된 건 '기분'이나 '감정'이 아니라, 더 기초적인 행동 상태—얼마나 각성해 있는지, 계속 밀어붙일지 그만둘지 같은—입니다. '포기 스위치'를 사람의 우울·의욕저하와 곧장 같은 것으로 놓는 건 아직 비약입니다. 별세포가 사람의 우울·불안에도 관여할 거라는 정황은 쌓이고 있지만, 그건 유망한 가설이지 증명된 사실이 아닙니다.
둘째, "별세포가 사실은 뇌의 지휘자다"라는 표현은 이 발견을 이끈 연구자들의 강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홀대받은 세포를 무대 중앙으로 끌어내려는, 방향은 옳지만 힘이 실린 프레임이죠. 별세포가 정말 신호물질을 내보내 뉴런을 조절하느냐는 사실 20년 넘게 논쟁거리였고, 이번 세 논문이 그 논쟁을 크게 앞으로 밀긴 했습니다. 그래도 한 연구자의 말처럼, 별세포 연구는 "뉴런을 1950년대에 이해하던 수준에서 그리 멀리 오지 못한" 초기입니다.
저는 이 '아직 초기'가 이 이야기의 흠이 아니라 매력이라고 봅니다. 우리 머릿속 세포의 절반이 이제야 제대로 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요. 확정된 결론을 파는 대신, 어디까지가 증거이고 어디부터가 기대인지 선을 긋는 것—그게 이런 뜨거운 주제를 다루는 정직한 방법입니다.
06뇌 지도를 다시 그린다면
요즘 뇌과학의 큰 목표 중 하나는 커넥톰—뉴런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남김없이 그린 배선도입니다. 대단한 작업이죠. 그런데 이번 발견이 던지는 질문은 뾰족합니다. 배선만 다 알면 뇌를 이해한 걸까?
별세포는 그 배선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도 회로의 작동 방식을 바꿉니다. 같은 지도라도 조명이 바뀌면 방의 표정이 달라지듯요. 그러니 뉴런만 그린 지도는, 아무리 정밀해도 한 층이 빠진 지도일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가 진짜로 흔든 건 특정 사실 하나가 아니라, 뇌를 '뉴런의 회로'로만 상상해 온 우리의 기본 그림입니다.
수업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과학은 '조연' 딱지를 붙여 둔 것을 다시 들여다볼 때 종종 크게 바뀐다고. 뇌의 절반을 청소부로 취급하던 시절이 저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환의 한복판을, 우리는 지금 실시간으로 지나는 중입니다.
- 별세포(성상교세포) — 별 모양의 교세포. 뇌 세포의 큰 축인데, 오래 '지지·청소' 조연으로만 취급됐다.
- 2025년 3편의 Science — 물고기·쥐·초파리에서 별세포가 행동 상태를 바꾸는 열쇠임을 나란히 보였다.
- 공통 밑그림 — 각성 신호(노르에피네프린)가 별세포를 깨워 뉴런 회로 상태를 바꾼다. 물고기·쥐는 칼슘→ATP→아데노신으로 신호를 내보냈고, 초파리는 별세포가 반응할지를 여닫는 문지기였다.
- 제브라피시 '포기' — 별세포를 끄면 지쳐도 안 멈추고, 켜면 곧장 멈춘다.
- 선 긋기 — 확인된 건 동물의 '행동 상태'. 사람의 감정·우울로의 확장은 아직 가설이다.
다시 처음 장면으로 돌아가 봅시다. 무언가에 지쳐 '이제 그만'이라고 마음이 꺾일 때, 그 결정을 내린 게 오롯이 당신의 '의지'가 아니라 별 모양 세포의 조용한 화학일 수 있다는 것. 조금 낯설지만, 저는 이게 겁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뇌를 이해하는 지도에 아직 채워 넣을 칸이 이렇게 많다는 뜻이니까요.
이 글의 근거 — 1차 자료
- Lefton, K. B., Wu, Y., ... Papouin, T. (2025). Norepinephrine signals through astrocytes to modulate synapses. Science, 388(6748), 776–783. — 쥐에서 노르에피네프린의 시냅스 효과가 전적으로 별세포를 거친다는 증거.
- Chen, A. B., ... Ahrens, M. B. (2025). Norepinephrine changes behavioral state through astroglial purinergic signaling. Science, 388(6748), 769–775. — 제브라피시 '포기(행동 상태 전환)'와 별세포 칼슘–ATP–아데노신 경로. 별세포 레이저 소거/활성화 실험 포함.
- Guttenplan, K. A., ... Freeman, M. R. (2025). GPCR signaling gates astrocyte responsiveness to neurotransmitters and control of neuronal activity. Science, 388(6748), 763–768. — 초파리 별세포가 옥토파민·티라민 신호로 '반응할지 말지'를 문지기처럼 조절.
- Quanta Magazine (2026-01-30). Once Thought To Support Neurons, Astrocytes Turn Out To Be in Charge. — 세 논문을 묶은 해설과 연구자 인터뷰(정신질환으로의 확장은 아직 '추정'이라는 단서 포함).
- 본문의 '뉴런 대 비뉴런 세포 약 1:1' 서술은 Herculano-Houzel 계열의 세포 계수 연구에 근거하며, 과거의 '교세포 10배' 통념이 과장임을 뜻함. 별세포가 사람의 우울·불안에 관여한다는 부분은 가설 단계로, 확정 사실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