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화학 교과서엔 100년 넘게 버텨 온 '금지 팻말'이 하나 있습니다. 분자의 다리목이라는 자리엔 이중결합을 놓지 말라 — 브레트 규칙입니다. 그런데 2024년, 미국 UCLA의 한 연구진이 바로 그 '만들 수 없다'던 분자를 만들어, 사라지기 전에 다른 분자에 붙여 버렸습니다. 규칙을 깬 걸까요? 아니면 그 규칙이 애초에 그렇게 단단하지 않았던 걸까요?
01브레트가 100년 전 못 박은 것
먼저 분자 골격 이야기부터. 다리 두 개가 한 점에서 만나 우리처럼 얽힌 구조를 가교 이환식(bridged bicyclic)이라고 합니다. 새장을 떠올리면 됩니다. 이때 두 다리가 공유하는 꼭짓점 탄소, 그러니까 다리가 갈라져 나가는 그 모서리를 다리목(bridgehead)이라고 부르죠.
1924년, 독일 화학자 율리우스 브레트는 장뇌에서 유도한 이환식 분자들을 오래 주무르다 한 가지 규칙성을 정리합니다. 이 다리목 자리엔 탄소-탄소 이중결합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 적어도 고리가 작을 땐 그렇다. 이게 브레트 규칙입니다. 그리고 교과서는 이걸 거의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가르쳐 왔어요. 다리목 이중결합? 그건 안 돼.
그런데 이런 '안 돼'를 만날 때마다 저는 학생들에게 되묻곤 합니다. 그게 정말로 불가능한 건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방법으로 안 되던 것뿐인지. 둘은 전혀 다른 얘기거든요.
02왜 안 되는가 — 평면이라야 할 결합이 비틀린다
규칙의 이유를 알려면 이중결합이 뭔지부터 봐야 합니다. 탄소끼리의 이중결합은 사실 두 겹입니다. 하나는 두 원자가 정면으로 맞댄 σ(시그마)결합, 또 하나는 위아래로 뻗은 p오비탈이 옆구리를 나란히 맞대 겹치는 π(파이)결합이죠.
이 π결합엔 까다로운 조건이 있습니다. 두 탄소의 p오비탈이 같은 평면에서 평행하게 마주봐야 겹칩니다. 조금만 틀어져도 겹침이 줄고, 90도로 비틀리면 아예 안 겹쳐요. 그래서 이중결합 주위는 늘 납작합니다 — 평평한 sp² 구조로 눕죠.
문제는 다리목입니다. 가교 골격은 뻣뻣한 새장이라, 다리목 탄소를 억지로 평평하게 눕히질 못합니다. 오히려 피라미드처럼 살짝 솟구치게(피라미드화) 만들죠. 그러면 두 p오비탈이 평행을 잃고 어긋나 — 옆구리가 안 맞습니다. π결합이 제대로 겹치질 못하니 결합은 헐겁고, 그만큼 미친 듯이 반응성이 커집니다. 히어로 그림의 오른쪽이 딱 그 장면이에요.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다리목에 이중결합을 놓으면, 그 결합은 고리 안에서 억지로 trans(뒤틀린) 배치가 됩니다. 그리고 작은 고리 속의 trans 이중결합은 — 곧 터질 듯한 긴장 그 자체죠.
이 '두 p오비탈이 나란히 겹쳐 이중결합이 된다'는 그림과, '오비탈이 어떻게 생겼길래 방향을 타는가'를 직접 돌려 보면 규칙의 이유가 훨씬 또렷해집니다.
SIM 공유 결합 형성전자를 나눠 갖는 단일·이중결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3D로 직접 조작 → SIM 현대의 원자 모형 — 오비탈
p오비탈이 왜 방향을 갖는지 — 이 '방향'이 어긋나는 게 브레트 규칙의 핵심 →
고리가 몇 원자면, 다리목 이중결합이 버틸까요?
다리목 이중결합은 그 결합을 품는 고리 안에서 trans가 됩니다. 그 고리가 클수록 뒤틀림을 넉넉히 흡수하죠. 이중결합이 놓인 고리의 크기를 골라 보세요.
기준선은 trans-사이클로옥텐(8원자 고리)입니다. 이 크기부터 뒤틀린 이중결합이 상온에서 분리될 만큼 버팁니다. 실제 분자는 치환기·고리 종류에 따라 이 경계가 조금씩 움직입니다.
03사실은 — 예외가 이미 있었습니다
여기서 솔직하게 짚을 대목이 나옵니다. 브레트 규칙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경험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는 이미 오래전에 그려져 있었어요.
1960년대에 와이즈먼, 케제, 위버그 같은 화학자들이 밝혀낸 통찰이 있습니다. 다리목 이중결합의 운명은 그 이중결합을 품은 고리가 얼마나 큰지로 갈린다는 겁니다. 방금 인터랙션에서 만져 본 그 원리죠. 큰 고리는 trans 이중결합의 뒤틀림을 여유 있게 받아 줍니다. 실제로 8원자 고리의 trans-사이클로옥텐은 (여전히 반응성은 높지만) 분리해 병에 담아 둘 만큼은 버티는 분자예요.
그래서 다리목 이중결합도 충분히 큰 고리에 얹히면 — 아무 일 없이 분리됩니다. 이런 '큰 고리 안티-브레트 올레핀'은 진작부터 만들어져 왔습니다. 브레트 규칙이 실제로 막고 있던 건 작은 고리, 그러니까 뒤틀림을 흡수할 여유가 없는 빡빡한 새장 속의 다리목 이중결합이었던 셈입니다.
규칙이 '불가능'이라 말할 때, 그건 종종 자연의 법이 아니라 '아직 방법을 못 찾았다'는 고백입니다.
042024년, Garg 연구진이 한 일
진짜 난제는 바로 그 작은 고리 쪽이었습니다. 잠깐 나타났다 눈 깜짝할 새 사라져서, 손에 쥐고 쓸 방법이 없던 '안 되는 축'의 안티-브레트 올레핀. UCLA의 대학원생 루카 맥더모트와 닐 가그 교수 연구진이, 켄 하우크의 계산화학과 함께 여기에 영리한 길을 냈습니다(Science, 2024).
방법이 재밌습니다. 다리목이 될 자리 옆에 규소가 붙은 실릴기를, 또 그 이웃 자리엔 쉽게 떨어져 나가는 이탈기를 미리 심어 둔 출발물질을 준비합니다. 여기에 플루오린화 이온(F⁻)을 넣으면 — F가 규소를 낚아채 아주 튼튼한 규소-플루오린 결합을 만들고, 그 반동으로 반대편 이탈기가 튀어나가면서, 바로 그 순간 다리목에 이중결합이 태어납니다. 한 연구자의 표현을 빌리면 규소-플루오린 결합이 워낙 강해서 "정말 뜨거운 이탈기"가 만들어지는 셈이죠.
그런데 이렇게 태어난 분자는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그 곁에 포획 파트너를 미리 대기시켜 둡니다. 안트라센·퓨란·나이트론 같은 고리화 시약이죠. 안티-브레트 올레핀이 생기자마자 이 파트너에 즉석에서 달라붙어, 안정한 새 고리 화합물로 바뀝니다. 조건을 맞추면 수율이 90%에 이르기도 했어요.
여기서 반드시 정직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안티-브레트 분자를 병에 담아 선반에 올린 게 아닙니다. 여전히 순식간에 사라지는 반응 중간체를,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 쓸모 있는 분자로 바꾼 겁니다. 헤드라인이 흔히 말하는 '불가능한 분자를 만들었다'는, '안정한 분자를 병에 담았다'와는 다른 이야기예요. 그럼에도 이게 큰 성과인 이유는, 그동안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던 이 순간을 자유자재로 열고 닫아 원하는 반응에 써먹을 수 있게 됐다는 데 있습니다.
증거도 깔끔합니다. 출발물질에 심어 둔 손대칭성(카이랄성)이 최종 산물까지 거의 그대로 전달됐거든요(약 98%). 중간에 분자가 제멋대로 뒤집혔다면 이 대칭성은 뭉개졌을 겁니다. [2.2.1]·[2.2.2]·[3.2.1] 같은 여러 골격에서 두루 통했다는 점도 이 방법이 요행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05왜 중요하고, '규칙'을 어떻게 대할까
화학자들이 이 소식을 반긴 데는 실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다리로 얽힌 3차원 새장 같은 골격은 신약 설계에서 값진 재료거든요. 납작한 분자보다 입체적인 분자가 단백질의 홈에 더 정교하게 끼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티-브레트 올레핀을 마음껏 만들어 붙일 수 있으면, 그동안 그리기 어렵던 3차원 뼈대로 가는 새 문이 열립니다. 다만 이건 아직 가능성입니다. 실제 약이 나오려면 갈 길이 멀어요. 미네소타대의 코트니 로버츠는 이 연구를 "긴장한 중간체 분야의 도약"이라고 평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의 진짜 교훈이 화학 밖에 있다고 봅니다. 교과서의 '규칙'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에너지 보존처럼 정말로 못 넘는 벽. 또 하나는 '지금까지의 방법으론 안 되더라' 정도의 경험칙. 브레트 규칙은 후자였고, 후자의 벽은 누군가 더 영리한 길을 찾으면 — 넘어갑니다. 가그 교수 본인도 이런 종류의 규칙 자체가 못마땅하다고 했어요. 넘을 수 없다고 못 박힌 규칙은 오히려 창의성을 죽인다는 겁니다.
물론 반대로, 두 종류를 헷갈리면 안 됩니다. 열역학 제2법칙이나 에너지 보존은 아무리 영리해도 못 넘죠. 과학의 묘미는 어떤 벽이 진짜 벽이고 어떤 벽이 팻말일 뿐인지를 가려내는 데 있습니다. 브레트가 팻말을 세운 지 100년 만에, 화학자들은 그 팻말 뒤로 걸어 들어가 본 겁니다.
- 브레트 규칙 — 1924년 율리우스 브레트. 작은 가교 이환식 분자의 다리목엔 C=C 이중결합이 잘 안 생긴다.
- 왜 — 다리목 이중결합은 고리 안에서 trans로 뒤틀려 두 p오비탈이 어긋나고, π결합이 헐거워져 반응성이 폭발한다.
- 예외는 원래 있었다 — 충분히 큰 고리(≈8원자↑)의 안티-브레트 올레핀은 1960년대부터 분리돼 왔다. 규칙은 법칙이 아닌 경험칙.
- 2024년 Garg 연구진 — 실릴기+플루오린화물 제거로 '작은 고리'의 불가능한 안티-브레트도 그 자리에서 생성·포획. 수율 최대 90%, 카이랄성까지 전달.
- 정직하게 — 분리·병입이 아니라 순간 중간체를 붙잡아 쓴 것. '규칙을 깼다'기보다 '경험칙의 경계를 정확히 그렸다'가 맞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교과서가 못 박은 분자를, 정말 만들 수 있을까요? 만들 수 있습니다 — 다만 병에 담아 두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찰나에 붙잡는 방식으로요. 그리고 그 성취보다 오래 남을 건, '안 된다'는 규칙을 만났을 때 그게 진짜 벽인지 팻말인지 한 번 두드려 보는 태도일 겁니다.
이 글의 근거 — 1차 자료
- McDermott, L.; Walters, Z. G.; French, S. A.; Clark, A. M.; Ding, J.; Kelleghan, A. V.; Houk, K. N.; Garg, N. K. (2024). A solution to the anti-Bredt olefin synthesis problem. Science, 386(6721), eadq3519. — 원 논문. 실릴 (가짜)할로겐 전구체를 플루오린화물로 제거해 안티-브레트 올레핀을 생성하고, (4+2)·(3+2)·(2+2)·(5+2) 고리화로 포획.
- 같은 논문 전문(PMC 오픈 액세스) — 안트라센 등 포획 시약별 수율, 카이랄성 전달(약 98% ee), 분리가 아닌 in situ 포획임을 명시.
- UCLA Newsroom — Chemists broke a 100-year-old rule. — 연구진 구성, 방법 요약, 가그 교수 코멘트.
- Chemistry World — Synthetic strategies overcome Bredt's rule. — 규소-플루오린 제거 메커니즘, 신약 각도, 코트니 로버츠 코멘트.
- Bredt's rule (Wikipedia). — 규칙의 역사(브레트 1924), 와이즈먼 가설, 큰 고리 예외의 계보(1960년대 Wiseman·Keese·Wiberg). 본문의 트랜스-사이클로옥텐 기준선은 이 경험칙에 근거한 대략의 경계로, 치환기·고리에 따라 이동함.